김닿아

01 — Intro

김닿아 キム ダア · KIM DAAH

축적의 힘을 믿는 낙관주의자.

From Seoul, Korea
Now in Kyoto, Japan

내가 가진 이야기가 의미 있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03 — Podcast Letter

매달 15일과 말일에 도착하는 글과 음성.

2026년 8월 15일 · 닿고파라

ep. 미래의 나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

일본 생활 8년 차를 기점으로 오사카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친구와 당분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만나진 하루. 아쉬운 마음에 막차를 보내고 함께 집으로 와 밤을 길게 늘였다. 긴 시간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발견한 서로의 닮은 구석이 과거도 현재도 아닌 미래에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나중을 그리는 방식이 비슷하다는 것만으로 언제고 반갑게 만나질 수 있겠다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순간을 함께 공유하더라도 지금이 흐르고 나면 더 만날 일이 없겠구나 - 짐작하게 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함께 한 시간이 추억에 가까워졌음에도 언제고 다시 만나질 것을 아는, 무소식을 희소식처럼 여기게 되는 이들이 있으니까. 소중한 이들을 한국에 두고온 것 같아 외로워지다가도 그들을 잃어버릴 것 같아 무서워하지는 않을 수 있는 것도, 서로에게 기꺼이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체력과 정성은 우리가 어디에서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 지와 별개로 흘러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생일을 맞아 삿포로에 다녀왔다. 해가 지날수록 스스로가 더위에 취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 일본 안에서도 유독 더운 교토를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이튿날까지는 제법 볕이 강했지만 바람이 불면 금세 쾌적해졌고, 생일이던 셋째날 오전에 비가 잠깐 내리더니, 이후로는 긴팔을 입어도 될 정도로 시원한 날이 이어졌다. 이 선선함을 두고 교토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서러워질 만큼 좋은 기온을 누리다 왔다. 발 닿는대로 걷고, 배차가 긴 버스를 기다리며 사람 구경을 하고, 바다를 한참 바라 보다 발 담그는 것을 잊고, 여름 축제 행렬에 껴서 어설프게 춤을 따라하고, 삿포로 비어 가든 인파에 끼어 맥주를 마시는 동안 생일을 핑계로 간만에 연락이 닿은 이들에게 틈틈이 답을 했다. 눈앞의 새롭고 낯선 것들을 누리면서 손으로는 익숙하고 다정한 마음들을 받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에어컨을 틀어 두고 이불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이 좋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혼자 하는 여행이었지만, 쓸쓸하지 않은 생일 주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해두고 싶은 마음에, 독채 공간을 찾아 묵는 평소와는 다르게 호스트와 함께 머무는 숙소를 예약했다. 2층 방에 묵으면서, 1층의 화장실과 욕실을 공유하고, 매일 내어 주시는 조식을 추가 비용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처음 방을 안내 받기 위해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한때 키우셨을 강아지 사진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주방과 거실 곳곳에도 젊은 시절 사진들이 붙어있는 것을 보고, 사람 냄새보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집인 것 같아 괜시리 슬펐는데, 사흘 간 조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된 호스트 에이코상은 매일 듀오링고로 한국어 공부를 하며, 30년 된 이층집과 화단을 부지런히 가꾸며 블루베리와 토마토와 이름 모를 꽃과 나무를 길러내는, 숙박업과 겸하여 이어 오던 오랜 본업을 정리하고 퇴사 여행으로 떠나는 10월의 부산과 경주에서 지하철에 가만히 앉아 종점까지 가보고 싶어하는, 열정과 쾌활함이 가득한 분이었다. 생일 날 조식을 다 먹어갈 쯤, 생일 노래를 부르며 냉장고에서 꺼내주신 케이크가 어찌나 달콤했는지.

8월에 접어 들고 나서야 지난 두어 달의 내가 퍽 고된 마음으로 올 여름을 지나고 있었음을 선명히 알게 되었다. 그 말은 어느새 그 마음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눈앞의 일상에서는 잦은 걱정과 불안을 이고 살지만, 미래를 향해서는 늘 막연한 낙관으로 나를 대하고 있다는 믿음을 꾸준히 품어왔다. 그 믿음 때문에 당장 마음이 힘들어도 넘지 않는 선이 있었다는 것, 근데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나 드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실은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고자 한 마음부터가 치기 어린 생각이 아니었는지, 일상을 콘텐츠로 만드는 행위가 나에게 어떤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져본 적 없는 마음들을 가지고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의심하고, 그 자체가 낯설어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더위와 체력 핑계를 대며 잠을 청한 날들이 생각보다 많았음을, 그리고 그것에 줄곧 갉아 먹히고 있었음을 홋카이도를 걸을 즈음이 되어서야 깨끗이 감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작년 생일부터 내년의 나를 위한 생일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축하의 마음이 일 년 전부터 준비되어 있다는 감각은 생경하고도 든든했다. 삿포로 여행을 위한 짐을 싸는 동안, 캐리어 한 켠에 일 년 간 묵힌 편지를 챙기며 무엇을 적었었는지 거진 잊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각은 인간에게 주어진 생각보다 근사한 재능이라는 생각을 했다. 에이코상의 다정한 생일상을 받고, 방으로 올라와 나갈 준비를 마친 뒤 편지를 읽었다. 서른의 나에게서 온 생일 편지 안에는,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말을 알고 있었다는 듯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열심히 상기시켜 주려는 문장들이 가득했다. 나는 누구보다 나를 오래 생각하고 염려해서, 나에게 틀린 것을 좀처럼 건네지 않을 것이라는 것. 느리지만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꾸준히 발신하는 동안 나를 알아주는 이들도 조용하고 꾸준히 쌓이고 있다는 것. 그래서 조금 더 믿어도 된다는 것.

며칠 전, 코로나 이후 혼자 왔던 첫 교토에서 알게 됐던 지인 분과 시간이 맞아 3년 반 만에 다시 뵙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처음 만난 그때부터 유튜브를 포함한 나의 기록을 쭉 지켜봐 주시던 분이기도 했는데, 당시 1000명 남짓의 구독자를 가진 채널을 5년 전부터 지치지 않고 이어올 수 있던 것이 그 흥미의 시작점이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 아래에 깔린 동력이 무언지 오래 궁금했다는 질문도 함께.

당시에는 기록 자체에 대한, 내가 남긴 기록을 내가 다시 볼 수 있음에서 느끼는 기쁨이 그 시작인 것 같다고 대답하였고, 나아가 스스로의 선택을 믿어주려는 자기 긍정과 막연한 낙관이 어떤 꾸준함을 돕고 있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는데, 그 마음을 더 파고 들다보니 내가 가진 호기심과 그것이 향하는 방향까지 짐작해보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제일 궁금한가 보구나. 그 식지 않는 궁금함을 사랑이라고 여기는가 보구나. 그래서 내 미래가 그렇게 궁금한데 궁금한 채로 두고 싶고, 지금의 내가 무얼 느끼는 지 더 잘 알고 싶구나. (나르시스트일까?)

나를 앞세워 세상을 보고자 하고, 나 자체로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기록에 스스로의 시선과 해석을 담고자 하고, 생각과 감정을 언어화할 수 있을 때까지 사유하려 하려는 마음. 이 마음의 시작이 무얼지 자주 곱씹어 보는 중이다.

내년의 나를 위해 생일 편지를 쓰고, 시간 내 운동을 하고, 보다 건강한 것을 먹이고, 필요 이상으로 피곤해질 것 같은 사람과 공간을 피하고, 좋아하는 것을 일로 하겠다 애를 쓰는 것은 결국 미래의 나를 궁금해하는 데 있어 즐거운 호기심만 남기기 위한 노력일 수 있겠다. 과거와 지금의 내가 서로 다투고 화해하며 결국에는 손 붙잡고 나아가는, 바라보는 방향이 같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스럽고 든든하다. 그런 서른 하나가 되었다.

카모강의 물결

04 — Cont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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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린 밤의 골목과 수국

내가 가진 이야기가 의미 있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교토에서, 김닿아